바이오매스(Biomass), 환경보존인가 환경파괴인가?
우리나라를 비롯해 전세계가 바이오매스를 이용한 바이오에너지 생산에 열을 올리고 있다. 세계가 여기에 관심을 가지는 표면적인 이유는 고유가와 환경문제라 할 수 있다. 사실 바이오매스는 하이테크놀리지 분야에 속하는 것도 아닐뿐더러, 인류의 역사와 함께 존재해 왔던 것이다. 생각해보라, 인류가 화석연료를 사용하기 이전에 무엇을 사용했겠는가? 거의 모든 에너지원을 살아있는 자연(식물과 동물)으로부터 얻지 않았겠는가? 심지어 화석연료조차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소위 ‘바이오(bio)’의 산물이라할 수 있지만, 여기서는 현재 세계가 열광하는 바이오매스를 화석연료의 상대적인 개념이라고 하자.
바이오매스는 크게 세가지로 분류된다. 바이오에탄올, 바이오디젤, 그리고 바이오가스이다. 바이오에탄올은 사탕수수, 옥수수, 감자와 같은 곡물을 발효 시켜서 얻은 에탄올을 말한다. 뭔가 친근하지 않은가? 그렇다 한마디로 곡주를 만드는 것이다. 바이오디젤은 식물성 또는 동물성 유지(기름)을 살짝 가공하여 디젤 자동차 연료로 만든 것인데, 아이러니컬하게도 디젤 내연기관(엔진)이 처음 개발되었을 때 땅콩 기름을 사용하였다고 한다. 제2차세계 대전으로 대량의 물량이 필요하자 석유에서 비슷한 물질을 추출하여 사용한 것이 바로 오늘날 경유 자동차가 이용하는 디젤이다. 바이오가스는 건초나 동물 배출물(용변) 등을 발효시켜 얻어내는 매탄가스를 말한다. 여기에 한가지를 덧 붙이지면 발효나 화학처리와 같은 특별한 공정을 거치지 않은 목재 자체를 가리키는 목질계 바이오매스가 있다.
불과 몇년 전까지만해도 이런 것들을 이용하는 것은 아마도 대부분 환경파괴로 치부되었다. 브라질에서 사탕수수를 재배하기 위해, 동남아에서는 기름야자를 재배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열대우림을 무참히 베어내고 있을지 상상이 가지 않는가? 며칠전 목질계 바이오매스 이용 방안에 대한 공청회가 있었는데, 내용을 살펴보니 모질계 바이오매스라는게 땔감 나무, 즉 ‘장작’을 말하는 것이었다. 어린시절 산에서 땔감 나무를 하는 것을 법으로 엄격히 금했던 것을 기억한다. 시골에서 땜감 나무 외에 도대체 무엇으로 밥을 해 먹고 엄동설한에 아랫목을 데우라고 금했는지 선뜻 이해하기 쉽지 않지만 그랬었다. 그래서 산에서 땔감 나무를 꾸려서는 순사(그때 그렇게 불렀다) 차가 오는지 살폈다가 잽싸게 신장로 위로 먼지를 날리며 리어커를 끌었던 기억이 아직도 선하다. 그런데 이제는 정부가 나서서 나무를 베어다가 불을 지펴 전기 발전을 하자는 것이다.
같은 것을 가지고 이렇게 차별대우를 하는 것은 ‘이산화탄소’를 둘러싼 해법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먼저 ‘지구온난화’를 예기하지 않을 수 없다. 태양광선이 지표면에 도달하면 일부는 지표에 흡수되고 일부는 반사되어 다시 우주를 향해 날아간다. 우주를 향해 날아가던 광선의 일부는 대기를 뚫고 우주로 나아가 흩어지지만 일부는 대기에 반사되어 다시 지구로 돌아온다. 이 모든 것이 적절하게 균형을 이룬 유일한 행성이 바로 지구이다. 그런데 오염된 대기로 인해 지표면에서 반사된 빛이 우주로 빠져나가지 못하고 갖히는 양이 증가하게 되고, 결국 지구의 온도가 상승한다. 이것이 바로 ‘온난화’라는 것이고, 이러한 온난화를 일으키는 대표적인 물질이 바로 ‘이산화탄소’이다.
온난화가스라고 하는 이 이산화탄소는 모든 유기물질이 분해되면서 발생하고, 대표적인 분해과정이 바로 연소, 즉 불에 태우는 것이다. 화석연료든 바이오매스든 모두 유기물질이고 태우면 동일하게 이산화탄소가 발생한다. ‘사람이 죽으면 한 줌 흙으로 돌아간다’는 말을 하는데, 정말로 한 줌 흙으로만 될까? 아니다. 사람이 죽으면 한 줌 흙과 엄청난양의 이산화탄소로 돌아간다. 사람의 몸은 흙으로부터만 온 것이 아니다. 사람은 식물을 먹고 자라고, 식물은 물과 이산화탄소를 먹고 햇빛을 쬐어야 자라는데 이것을 ‘광합성’이라고 한다. 식물은 화학적으로 이산화탄소로부터 만들어진 탄소 덩어리이다. 식물을 잘 태워보면 숯이 남는데, 이게 바로 탄소다. 이제부터 말을 바꿔보자. ‘사람이 죽으면 한 줌 흙과 많은 이산화탄소로 돌아간다’ 산천포로 많이 흘렀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보자.
바이오매스가 과거에는 환경파괴의 주범이었는데, 지금와서 갑자기 환경보전의 유일한 대안으로 떠오르는 이유가 무엇일까? 인류의 역사와, 아니 지구의 역사와 함께 이산화탄소를 내뿜던 바이오매스가 갑자기 배출을 멈추기라도 한 것인가? 단언하건데 전혀 그렇지 않다. 그것은 이렇게 설명해 볼 수 있다. 과거에는 대기중에 존재하는 이산화탄소를 먹고 자라는 식물을 키우고 보전하는데 역점을 두었다. 식물로 하여금 가능한 한 많은 이산화탄소를 흡수하여 자신의 몸에 저장하게 하면, 인간은 계속해서 화석연료를 태울 수 있을 것이라 여겼던 모양이다. 환경하면 나무를 심고 가꾸고 보존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것만으로는 역부족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새로 자라는 식물보다 베어 내는 식물이 훨씬 많을뿐 아니라, 인류는 식물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많은 화석연료를 태우는 것이었다. 게다가 화석연료의 값이 과거에 비해 너무 비싸졌다. 자 이제 새로운 논리가 필요해진 것이다.
바이오매스도 태우면 이산화탄소를 배출하기는 마찬가지이지만 지구 전체의 이산화탄소 절대량을 증가시키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바이오매스 자체가 대기 중에 있던 이산화탄소를 잡아 뭉쳐 놓았던 것이고, 이를 다시 대기에 되돌려 주는 것일 뿐이기 때문이다. 반면 화석연료는 절대량을 증가시킨다. 즉 바이오매스를 사용하여 화석연료의 사용을 줄이면 이산화탄소의 절대량이 증가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바이오매스의 사용은 석유 의존도를 낮추어 석유의 무기화를 약화시키는 효과도 있을 것이다. 이 정도면 바이오매스 쪽에 손을 들어 주지 못할 이유가 별로 없어 보인다.
하지만 여전히 동전의 양면은 존재한다. 현재 바이오매스의 제조원가는 분명이 화석연료보다 비싸다. ‘비싸다’는 말은 무엇인가? 그만큼 에너지가 많이 들어갔다는 뜻이고, 그 에너지가 혹 화석연료를 태워서 만든 것이라면? 또 미국에서 사용하는 가솔린을 모두 바이오에탄올로 대체하려면 미국 전 영토의 98%에 옥수수를 심어야한다고 한다. 국토의 98%에서 바이오에탄올 원료작물을 재배해야 한다면 이것이 환경을 보존하는 일일까, 아니면 파괴하는 일일까? 동남아시아서 열대우림을 베어내고 바이오디젤을 얻기위해 기름야자수를 심는 것이 궁극적으로 지구를 식혀줄까, 아니면 더 가열시킬까? 솔직히 나도 모르겠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화석연료의 사용을 줄여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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