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중립(Carbon Neutral), 해법인가 면죄부인가?
요즘 미디어를 통해 “탄소중립(Carbon neutral)”이라는 용어를 간간이 접하게 된다. 이 용어는 the New Oxford American Dictionary’s Word Of The Year for 2006에 등제된 아직 김이 모락모락 날정도로 따끈따근한 단어라 할 수 있다. 힐러리 클린턴 등 유명인사들과 구글, 야후와 같은 유명 업체들도 “탄소중립”을 선언하면서 더욱 유명세를 타는듯하다.
언뜻보면좀 난해해보 보이지만 기본 개념은 아주 간단하다. 대기중으로 배출하는 이산화탄소의 순(net) 량을 “0″으로 만들어 대기중 이산화탄소의 총량을 더하지도 빼지도 않는 “중립”상태를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탄소중립을 구현하는 방법은 일반적으로 다음 세가지를 조합하는 것이다.
- 에너지를 적게 사용한다. 자동차를 적게타고 에어콘을 적게 사용하고 보일러 온도를 낮추라는 말이다.
- 재생에너지를 사용한다. 어쩔수 없이 에너지를 사용해야한다면 기왕이면 온실가스 배출이 적은 재생에너지를 사용하라는 말이다.
- 그래도 피할 수 없는 배출량은 탄소프로젝트에 기여하거나, 배출권을 구매하여 상쇄하라. 위 두가지 방법은 배출량을 줄일 수는 있지만 근본적으로 중립을 유지할 수는 없다. 따라서 직접 나무를 심거나, 나무를 심는 사업에 기부하거나, 이산화탄소를 적게 배출하는 사람에게서 그 배출권을 사라는 말이다.
여기서 문제의 논쟁을 유발시키는 것은 세번째 배출시킨 탄소를 “돈”으로 상쇄키는 일명 Carbon offset이라고 하는 것이다. 백마디 말보다 한장의 그림이 더 설득력이 있을 때가 있다. New York Times에 실린 삽화다. 원문 Carbon-Neutral Is Hip, but Is It Green?

<회개와 구원>
남자: 용서해 주세요. SUV질(?)을 하고 말았습니다.
신부(업자): 가도 좋습니다. 죄가 사해졌(상쇄되었)습니다.
고급 SUV 승용차를 타며 즐거운 한때를 보낸 우리의 주인공, 드라이브를 할 때까지는 좋았는데 이내 자신이 지구 온난화에 일조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린다. (특히 미국차 연비는 최악이라고 한다.) 결국 신부(사실은 대행 업체)를 찾아가서 고해성사를 하며 면죄부(carbon offset)를 산 후에야 죄책감에서 벗어나 다시 마음 놓고 SUV를 즐긴다.
굳이 지구온난화가 아니어도 에너지를 절약해야 한다는 명제는 당위성을 가질 수 있으며,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의할 것이다. 그러나 교토의정서에 의해 시작된 “탄소 거래”가 과연 실효성이 있는 것인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대표적인 것이 듀반선언(The Durban Declaration on Carbon Trading)이라고 하는 것이다. 듀반선언문의 골자는 탄소 거래로는 결코 기후변화를 막을 수 없다는 것이다. 정부나 회사들은 탄소 거래에 열을 올리기 이전에 화석 연료 사용를 줄이는 노력을 먼저 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여전히 무지막지한 화석연료 사용을 지원하는 정부나 회사들이 다른 한편으로는 탄소를 거래하려는 것은 적반하장이요,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꼴이라는 것이다.
일리가 있는 주장이다. 지구상에 사는 인간은 평균적으로 일년에 4.5톤 정도의 이산화탄소(또는 이에 상응하는 온실가스) 배출에 기여하며, 미국인은 20톤 이상을 쏟아내고 있다고 한다. 과연 무엇으로 이렇게 엄청난 양의 탄소를 상쇄할수 있을까? 도대체 나무를 몇 그루를 심어야 그 나무들이 광합성을 통해 공기중의 이산화탄소 20톤을 잡아 먹을 만큼 성장할까? 현재와 같은 양의 이산화탄소를 앞으로도 계속내 품으며 살고 싶다면, 돈으로 그만큼의 배출권을 사는 것 외에는 달리 대안이 없어 보인다. 돈 있는 사람은 이산화탄소를 실컷 배출하고도 배출권을 구입하여 마음의 평안을 누리므로 계속해서 거리낌 없이 이산화탄소를 배출해댈 것이다. 결과적으로 탄소 거래는 이산화탄소 배출을 억제하기는 커녕 이산화탄소 배출에 정당성만을 부여하는 꼴이 되고 마는 것이다.
힐러리 클링턴이 탄소중립 선거운동을 선언한 것이 정말로 지구온난화를 걱정해서 일까, 단순히 정략적으로 이용해 먹기 위해서일까? 구글과 야후가 정말로 지구를 구하기 위해서 선행을 베풀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마케팅에 이용해 먹기 위해서 생색을 내고 있는 것일까? 나는 일단 뭔가 하는 것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한다. 또한 중요한 것은 돈으로 면죄부를 샀는지나 정략적으로 이용해 먹었느냐가 아니라, 궁긍적으로 지구온난화를 억제했느냐는 것이라고 믿는다. 면죄부의 폐악은 면죄부를 위안 삼아 새 힘을 얻고 그 힘으로 또 다시 반복해서 죄를 짖는데 있다. 정말로 뉘우치는 마음으로 면죄부에 대한 값을 지불한 후 과거의 행태에서 돌이켜 다시 죄를 짓지 않는다면 면죄부가 그렇게 나쁠 것도 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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